:::: C A P E L L A ::::

  그래도 난, 지구본을 돌려놓고 빙빙 돌리다 어느 곳을 콕 찍으면서 멈춰도 그곳이 어디라고 맞출 수 있는 지구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유럽에서 만난 친구들이 "한국은 한국만의 언어가 따로 있니?"라고 묻거나, "어디있는 나라니?"라고 물을 때, 친절하게 대답해주면서도 "왜 이런것도 몰라! 공부 좀 해!"라고 속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태국에서 있었던 워크숍에 참여하고, 여러 나라에서 온 많은 친구들을 보면서, 나부터 공부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워크숍에 참여한 친구들의 국적은 한국, 일본, 싱가폴,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 헝가리, 루마니아, 영국, 아일랜드, 그리스, 불가리아, 핀란드, 체코. 진짜 처음만나보는 나라 사람도 많을 정도로 다양한 나라에서 친구들이 왔다. 친하게 지낸 친구들 중에는 동남아시아 친구들이 많았는데, 어느날 문득 혼란을 느꼈다. 대체 태국, 베트남, 싱가폴, 인도네시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거야!! 그래서 태국 친구에게 내 노트를 내밀며 이 동네 지도 좀 그려줘 라고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아시아 지도는, 가운데 한국이 있고, 왼쪽에는 중국, 오른쪽에는 일본, 위에는 러시아 영토가 조금 나오는 지도였는데, 이 아이들이 그리는 지도는 나와 달랐다.

친구가 그려준 지도


  대충 재빨리 그리고 태국 중심의 지도라서 나중에 이 그림을 본 싱가폴 친구는 "우리나라는 이렇게 크지 않아"라고 말하고, 인도네시아 친구는 "우리나라가 섬이 얼마나 많은데 하나밖에 안 그리다니" 라고 했지만, 적어도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그림을 워크숍 내내 펴보면서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친구들이 지구상에서 어느 곳에서 왔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애썼다. 

  동남아시아는 이렇게 이해했는데, 더 문제는 동유럽. 진짜 그려달라고 할 수도 없고 답답하기를 여러번. 하루는 불가리아에서 온 친구가 자기는 해양학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너희 나라엔 바다가 있니' 라고 물어보니까, 동쪽에 있다고 하더니 나중에 지도로 찾아보니까 정말 있었다. 근데 솔직히 그리스랑 루마니아, 헝가리, 불가리아 어디붙어있는지 아직도 헷갈린다.

  매일 강의 시작하기 전에 각 나라별로 나와서 자기나라 인사말을 가르키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도 참 좋았다. 핀란드에서는 정말 '휘바'라는 인사말을 쓴다는걸 알게되었고, 공항에서 부터 지겹게 들었던 인사말인 '사와디캅'은 사실 여자는 '사와디카'라고 해야한다고 배웠고, 불가리아와 헝가리와 루마니아가 다른 말을 쓴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안녕하세요'를 어려워하면서도 따라하려고 애쓰는 친구들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고, 나도 그 나라 인사말로 답해주려고 했는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아 다시 노트를 펼쳐보던 일도 있었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한꺼번에 만나면서 세계관이 참 많이 달라졌다. 어쩐지 좀 꺼려지던 동남아시아에 있는 나라들은 이제 내 친구들이 미소를 보내는 나라가 되었으며, 서유럽에 비해 흥미롭지 않았던 동유럽에도 친구들을 만나러 언젠가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우리가 그 쪽 지방에 대해 잘 모르고, 언어에 대해 잘 모르듯 그들도 한국, 중국, 일본이 헷깔린게 당연하다는 것이 알게되었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한국을 알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나도 이제 세계 어느나라 사람을 만나더라도 '아~ 너네나라 어디 있지?' 라고 말해줄 수 있을 정도로 세계에 관해서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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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가을 태국에서 열린 한 워크샵에 참가 했었다. 방콕에서 버스를 타고 몇 시간 간 Kao Yai라는 국립공원에 있는 한 리조트에서 진행했다. 프로그램 중에 필드트립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내가 가기로 결정한 곳은 Elephant Center라는 곳이었다. 사실 Kao Yai 국립공원 안에 들어가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선착순에서 밀렸다. 

  필드트립 나가기 전날, 하루의 일정이 끝나고 들어가다가 태국 친구들과 앉아서 수다를 떨었다. 참가자들은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일본 등 아시아에서 온 친구들과 영국, 헝가리, 그리스, 핀란드 등 유럽에서 온 친구들이 있었는데, 비슷한 나이 또래였던 태국 친구들과 가장 친하게 지냈다. 나중에 프로그램 진행한 스태프가 "한국애들이랑 태국애들이랑 왜 이렇게 친해?"라고 물어볼 정도로 우리들은 붙어다녔다. 어쨌든, 그날 밤에 나온 이야기가 태국에 '코끼리 노래'가 있다면서 내일 코끼리에게 불러주란다. 들어보니까 별로 어렵지도 않고, 태국어라는게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친구가 적어준 가사를 보아가면서 열심히 외웠다. 그 노래가 바로 'Chang Chang Chang'이다. 'Chang'은 코끼리란 뜻! 유투브에 찾아보니까 이 노래가 있다. 



  근데 이 영상 너무 귀엽다. >.< 아무튼 이 노래였는데, 친구가 노트에 가사를 영어 발음이랑 뜻으로 써줬고, 나는 그걸 한글로 위에 써놓고 열심히 따라 불렀다. 그래서 어느 정도 다 외웠다.


  드디어 다음날. 엘리펀트 센터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코끼리를 만났다. 코끼리를 타고 무려 한 시간이나 돌았다. 
 

내가 탄 코끼리!


  코끼리를 타고, 안내를 해주는 청년에게 말했다. "나 코끼리 노래 부를 수 있어요." 그랬더니 이 청년이 "나도 부를 수 있어요, 한국 코끼리 노래" 이러면서 갑자기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며는 코로 먹지요~♬"를 부르는게 아닌가!! 알고보니 전에 파타야에서 코끼리 관광하는 곳에서 일했는데, 한국인 신혼부부들이 많이 와서 배웠단다. 그래서 나도 지지않으려고 태국 노래를 불러주었다. 

  코끼리 트래킹을 즐기고, 다시 워크샵 장소로 돌아와서 보고회를 해야하는데 보고회는 프리젠테이션인데 말은 안하고 사진으로만 이루어진 프리젠테이션으로 해야했다. 우리 조 일본에서 온 언니가 배경음악으로 코끼리 노래를 부르면 어떻겠냐고 해서 즉석에서 코끼리 중창단 일명 'Elephant girls'가 결성되었다. 멤버의 국적은 한국, 일본, 태국, 베트남. 다른 조원들이 프리젠테이션 만드는 사이 우리는 노래를 연습했다. 일단 태국 노래 외우고, 한국노래도 가르쳐주고 일본 노래도 배웠다. 베트남 노래는 너무 어려워서 못 부르고 .. 발표가 시작되자 우리는 배경음악으로 각 나라의 코끼리 노래를 불렀다. 다 못 외웠으니까 사실 본인 나라 노래는 자기가 마이크 잡고 부르고 나머지 사람들은 읽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반응은 폭발적. 다른 나라 애들 완전 열광. 그 다음부터 무슨 일만 있으면 자꾸 나보고 코끼리 노래 부르라고 ;;; 마지막날 헤어지는데 헝가리에서 온 아이가 "코끼리 노래 몇 번 불렀어?"라고 물어봤다. 그리고 태국 친구도 내 페이스북에 나보고 'Best Elephant Singer'란다. 나 진짜 노래 못하는데, 살다살다 노래로 칭찬받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태국, 일본 코끼리 노래를 외우고, 베트남 노래는 듣고, 한국 노래는 가르쳐주고 왔다. 싱가폴 친구가 일본 노래 듣더니, 중국 노래는 음과 가사는 같은데 발음만 다르단다. 중국노래까지 배울뻔했다. 그런데 신기한건, 이렇게 아시아에는 코끼리 노래가 많았는데, 유럽애들은 자기 나라에 코끼리 노래 없다고 신기해했다. 아무튼 나는 워크샵에서 코끼리노래로 한류스타였다.

  코끼리 노래를 배울 때, 한국에서 태국사람 만나면 불러줄꺼야, 라고 다짐하고 배웠는데, 글쎄 - 아직 불러줄 사람을 못 만났다. 만나면 놀래켜주려고 인사말이랑 숫자 1,2,3이랑 언니 동생 이런거 다 기억하고 있는데, 태국사람을 못 만나서 시험할 기회가 없다. 노래 배울때 농담처럼 "한국에서 닉쿤만나면 불러줄꺼야"라고 했는데, 불가능한 이야기겠지 ㅠ.ㅠ 난 언제나 불러줄 준비가 되어있다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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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가을에 방콕 근교의 카오야이(Kao Yai)라는 국립공원에서 열린 한 워크샵에 참석했었다. 하지만 워크샵 기간 내내 리조트에만 있고, 교육도 계속 있고 그래서 방콕을 잘 보고 왔다고는 못하겠다. 다만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기고, 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생겼을 뿐 - 그래도 마지막 날 공항가는 길에 한 사원에 들렀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보던 유적의 모습과 참 달라 놀라웠다. 그곳이 바로 아유타야의 왓 프라시산펫(Wat Phra Si Sanphet).

  워크샵의 마지막 날. 점심을 먹고 일정이 끝났다.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은 이제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비행기 시간이 빠른 친구들은 벌써 떠나기 시작했다.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면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는 밤 12시 쯤이어서 오후 시간이 남았다. 원래는 방콕에 들렀다가 올려고 그랬는데, 교통사정이 안 좋아서 아마 가면 바로 출발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태국인 스태프 한 명이 자기 집이 공항 근처라서 집에 가면서 몇 군데 들러서 구경 시켜주고 가겠다고 해서, 유럽 아이들은 모두 그 스태프를 따라간다고 했다. 나는 그냥 공항에 가서 오후내내 기다릴 뻔 했는데, 자리가 하나 남는다고 같이 가자고 해서 같이가게 됐다. 사실 워크샵 내내 유럽에서 온 친구들과는 미묘한 벽이 있어서 친해지지 못했는데, 이날 다들 친절하게 잘 해주고, 말도 잘 걸어줘서 그 동안 못 친해졌던게 아쉬웠다.

  일찍 출발했는데도 교통체증은 듣던대로 심각했고 저녁도 먹고 해야되서 사실 본 곳은 많이 없다. 거의 유일하게 보고 온 곳이 이곳. 왓 프라시산펫(Wat Phra Si Sanphet).  사실 이 주변에 여러 관광자원이 있어서, 코끼리도 탈 수 있고 태국가옥 안도 들어가 볼 수 있고 그렇다던데 시간이 늦어서 문 닫아서 요기밖에 못봤다. 이 곳은 아유타야(Ayutthaya)의 사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사원으로, 상징적인 유적 중 하나였다고 한다. 원래 왕실 전용 사원이었는데, 버마의 침입으로 파괴되고 사원 가운데에는 15세기 후반 세워진 실론(스리랑카) 양식의 파고다 3기가 남아 그 안에는 역대 왕 3명의 유몰, 의복, 불상이 있다고 한다.











  워크샵 기간 내내에도 많이 느낀 것인데, 그 동안 세상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아시아'라고 하면 으레 한,중,일만 떠올리며 우리를 중심으로 생각했었는데, 태국에 와서 그런 시선들이 참 많이 바꼈다. 그간 보아온 건축양식과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면서 정말 '와~'라는 감탄사 밖에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우울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이제 곧 한국으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신나고 들뜬 기분보다는 차분하고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이 곳의 역사적 흔적 때문이기도 했나보다. 이 자리에 있었을 찬란한 유산들이 이제는 폐허가 되어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불상들은 침략자에 의해 목이 베어져 있었고, 붉은 벽들은 울고있는 것 같았다. 하얗게 피어있는 꽃 마져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태국 친구가 해준 그 이야기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래서 여행 포스팅은 빨리 해야 ;;) 침략과 약탈의 역사는 언제나 참 슬프다. 


  바로 옆에 있던 왓 몽콘 보핏(WAT MONGKHON BOPHIT). 이 곳도 문을 닫아서 보지는 못 했다. 15세기 만들어진 청동불상이 있어, 많은 태국인들이 찾아온단다. 이 곳도 1767년 버마 침략때 파괴되었는데, 1956년 복구했다고 한다.


  근처에 있는 태국 전통가옥. 근데 여기도 문 닫아서 밖에서만 봤다. 해는 지고, 비행기시간은 다가와 공항으로 갔다.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바이바이하고 영국으로, 한국으로, 루마니아로, 헝가리로 떠났다. 

  거의 유일하게 보고 온 태국의 유적지의 모습인데도 왠지 짠 하게 남아있는건, 그날 느꼈던 이별의 안타까움과 흔적만 남아버린 유적지의 아쉬움이 뒤섞여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 위상은 참 당당하고 멋있었다. 언젠가, 꼭 다시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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