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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를 알아보자! -1' 을 통해, 두바이가 얼마나 독특한 도시인지 알아보았습니다. 보면 볼 수록 두근 두근한 이야기 들이 가득~ 그럼 대체 이 두바이가 어디에 붙어있는 나라이고, 어떤 사람들이 살기에 이러한 발전을 이루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두바이가 어떤 곳인지 알아보자. 네이버 백과 사전에 의하면 두바이는 ...

두바이 [Dub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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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반도, 아라비아만(灣) 연안에 있는 토후국.
 
원어명  Dubai
위치  아라비아만 연안
인구  91만 3000명(2000)
 
 아랍에미리트 연방을 구성하는 7개국 중의 한 나라로, 전에는 트루셜오만의 구성국 중 하나였다. 두바이는 아랍어(語)로 ‘메뚜기’를 뜻하며, 토후국 중 유일한 국제 무역항으로 발전하여 중계무역지가 되었다. 1969년부터 석유를 수출하기 시작했으며, 1971년에는 650만 t의 원유를 수출하여 새로운 산유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보다 시피 아랍 에미리트 연합국의 토후국 중 하나 이다. 그럼 이번에는 아랍에미리트 연합국에 대해 알아보자.

아랍에미리트 [United Arab Emir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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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비아 반도 동부에 있는 7개 에미리트[아랍 토후국(土侯國)]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1853년 실질적인 영국의 보호국이 된 이래 여러 토후국들이 흥망과 집산을 되풀이하다가 1971년 카타르·바레인을 제외한 토후국들이 에미리트 연합국으로 독립하였다.
 
  정식 명칭은 아랍에미리트연방(United Arab Emirates)이다. 동쪽으로 오만, 남서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북서쪽으로 카타르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페르시아만(灣)에 면한다. 서쪽으로부터 차례로 아부다비(Abu Dhabi), 두바이(Dubay), 샤르자(Sharjah), 아지만(Ajman), 움알카이와인(Umm al-Qaiwain), 라스알카이마(Ras al-Khaimah), 푸자이라(Fujairah)의 7개 토후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9개 토후국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1971년 카타르와 바레인이 분리 독립했다. 라스알카이마는 1972년 2월에 연합국의 일원이 되면서 아랍에미리트는 현재와 같은 연방 구성을 갖추게 되었다.  
 
+ 면적 : 83,600km^2 (남한 면적의 약 80%)
+ 수도 : 아부다비 (Abu-Dhabi)
+ 인구 : 약 284만명
+ 언어 : 아랍어 (영어통용)
+ 종교 : 이슬람교 (수니파 80%, 시아파 20%)
+ 기후 : 아열대 소한기후
+ 기온 : 평균기온 - 4월~10월 섭씨 38~47도, 11월~3월 섭씨 10~35도
+ 날씨 : 고온 건조 (바닷가 쪽은 다습함)
+ 민족 : 현지인 (아랍에미레이트인) 약 20%, 외국인 (인도, 파키스탄, 유럽) 80%
+ 산업 : 석유수출, 금세공, 관광 등
+ 자원 : 원유, 가스
       - 원유 : 매장량 981억배럴 (세계 3위), 생산량 200만 배럴/일(99.4, OPEC 쿼타 기준)
       - 가스 : 매장량 204조 Cubicfeet (세계 4위)
+ 환율 : Dirham (디르함)을 쓰며, 1 Dirham = 약 283원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 UAE 소개 >

  그렇다. 우리나라 축구할 때 종종 보던 UAE란 나라의 토후국 중의 하나가 바로 두바이 였던 것이다! 그리고 주요 석유 중의 하나인 '두바이유' 할 때 나오는 두바이가 바로 그 두바이 였던 것이다!

  이런 두바이가 다른 UAE의 토후국에 비하여, 주목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지금의 두바이를 있게 한 지도자의 선견 지명, 그리고 리더쉽을 들 수 있다.

1. 셰이크 라시드

  두바이가 작은 어촌 마을이던 시절인 1958년 새 부족장이 선출되었고, 그 부족장이 바로 "셰이크 라시드" 이다. 셰이크 라시드는 취임 하자 마자 두바이를 중동 최고의 허브항으로 만들 구상을 하였다. 하지만 주민들은 작은 어촌마을에서 중동의 허브 항구라며 반대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꿈꾸는 자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셰이크 라시드는 건설에 착수하여 5년만에 '두바이유'로 불리는 엄청난 매장량의 원유를 발견하고, 착공 13년만에 중동 최대의 '라시드 항구'가 건설 되었다. 그 후, 석유의 시대가 끝날 것을 대비한 셰이크 라시드는 오일달러를 활용 하여 산업, 금융, 관광에 투자를 집중하였다. 1966년에 2011년의 탈 석유시대를 예견하고 준비 하였다니, 대단 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다.

  셰이크 라시드에게 배울 점은 두 가지 이다. 미래를 내다 본 '선견 지명'과 '추진력'. 현실에만 안주하지 말고, 먼 미래를 내다봐 준비하였기에, 다른 어떤 중동 도시보다도, 세계의 어떤 도시보다도 앞서갈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생각 한 바를 실천에 옮기는 '추진력' 또한 주목 할 만하다.

2. 셰이크 모하메드
 
  1948년 셰이크 라시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셰이크 모하메드는 1995년 계승자로 지목 되었다. 장남의 권력 승계가 일반적인 중동에서 셋째 아들이 권력을 물려 받다니, 하지만 아무도 이견이 없었다는 점에 그의 어떤점이 그러게 만들었는가 주목할 만하다.
  그는 두바이 첫 축구 클럽팀을 만들었고, 가라테 검은 띠를 땄으며, 중동의 여선 차별 속에서도 딸을 가라테 국가대표 선수로 키웠다. 두바이 해변이 너무 짧아 관광지 개발을 하기 힘드니 인공섬을 만든 것도 그였고, 두바이 랜드도, 수중 호텔도, 그가 구상했던 일들이다.
  셰이크 라시드에게 '선견지명'과 '추진력'이 있었다면, 현 국왕인 셰이크 모하메드 에게는 '상상력' 이 있다.

  새해 첫날부터 조선일보에 나온 기사는 그의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 였다. ( 관련기사 ) '베인 앤드 컴퍼니'의 리더십 전문 컨설턴트 들의 평가에 의하면 그는 전형적인 비전 제시형 리더 라고 한다. "두바이는 실패 말고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며, 명확한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공유하여 지금의 두바이를 있게 만든 것이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말한다. "아직 나는 내가 꿈꿔 오던 것의 10%도 보지 못했다." 고 말이다. 그의 머리 속에 얼마나 더 큰 꿈이 들어있는지, 그것을 공유 할 수 있는지는 두고 볼 문제이다.

  어쨋든 셰이크 모하메드의 '비전 제시형 리더십', 한 번 배워 볼 만 하다.


 두바이의 이러한 모습들이 우리나라에서 특히 주목 받고 있는 이유는 석유의 의존도를 없앴다는 점, 그리고 중동의 허브로 다시 태어났다는 점 이다. 우리는 석유 한 방울 안나는 나라라며 불안해 하면서도, 이렇다 할 준비를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의 허브로 만들겟다고 하면서도 그닥 눈에 보이는 것은 없다. 새로운 미래를 두바이를 통해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리더십의 부재이다. 국가 비전을 공유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할 원동력을 주는 리더가 우리에겐 절실한 바이다.

 두바이의 이런 모습들, 내가 두바이에 가도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는 부분 들이다. 하지만, 마음 속에 있다면 이런 점들을 염두하고 본다면, 보다 새로운 시선으로 두바이를 바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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