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 A P E L L A ::::



   사실 일본에 한 두번 간것도 아니고, 도쿄도 한 두번 간게 아니라서 가기 전에는 '아! 이젠 자유시간 있어도 갈 때가 없어!' 라고 생각하는데, 막상 가게 되면 어딘가 처음 가 보는 곳을 찾아가게 된다. 이제 그 범위가 도쿄를 넘어 카나가와현까지 뻗어나갔다. 사실 가마쿠라랑 하코네는 전에 가봤고, 요코하마는 이 때 1주일 째 머물고 있었으니까 ... 그래서 이번에 가기로 결정한 곳은 바로 에노시마(江ノ島)였다. 에노시마는 이미 알려진 대로 슬램덩크의 배경이 된 장소!! 나의 초등학교 시절 방학 내내 빌려봤던 슬램덩크의 장소라니!! 꼭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에노시마로 향했다.

  보통 신쥬쿠에서 오다큐센 타고 많이 가는것 같던데, 나는 요코하마에 1주일 째 머물고 있어서 요코하마에서 출발했다. 요코하마에서 JR요코즈카센을 타고 가마쿠라에 가서 가마쿠라에서 에노덴을 타고 갔다. 에노덴은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타고다니던 그 전차!! 초록색 에노덴은 정말 귀여웠다. 조용한 주택가를 조금 지나가자 어느덧 바다가 보였다. '와! 바다다' 요코하마에서 1주일 내내 바다 봤는데도 불구하고 에노시마에서 만나는 바다는 또 달랐다. 사진은 안 찍었지만, 강백호가 채소연을 기다리는 그 신호등을 지나, 에노시마 역에 도착했다.


  에노시마역에서 내려서 주택가를 지나 걸어가면 에노시마벤텐바시(江ノ島弁天橋)라는 다리가 나온다. 바로 저 다리를 지나면 에노시마! 하지만 에노시마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처음엔 혼자 온게 좋았는데, 다정하게 다리를 건너는 연인과 가족들을 보니 문득 외로워졌다. 그래도 꿋꿋하게 다리를 건너 에노시마에 도착! 상점가로 시작되는 에노시마!!! 상점가에선 여러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나를 유혹했지만, 주머니엔 동전밖에 없었고, 오랜 체류와 환율크리로 돈이 없는 상황이어서 아쉽게 지나갈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상점가 가운데 있는 우체국에 찾아가서 전날 밤에 쓴 엽서를 보냈다. 내 엽서를 받은 많은 지인들의 엽서가 사실은 이곳에서 출발했다.


  에노시마는 둘레 5km, 면적 0.38km^2의 작은 섬이어서 걸어서 구경해도 되지만, 언덕길이 조금 있어서 힘들어보이기도 하다. 그럴때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면 된다는데, 돈도 없고 걷고 싶었던 나는 걸어가기로 결심!! 가이드 북에서 쭈욱 찢어간 지도를 보며 한 군데씩 돌아봤다.

  상점가가 끝나면 나타나는 즈이신몬. 그 안으로 들어가면 에노시마의 3개의 신사(헤츠노미야(辺津宮), 나카츠미야(中津宮), 오쿠츠노미야(奥津宮)) 중 하나인 헤츠노미야가 나타난다고 하는데 나는 그 앞에서 다른 쪽으로 올라가버려서 헤츠노미야는 마지막에 갔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무성한 나무 사이로 아름다운 항구의 모습이 보였다.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다시 힘을내서 올라갔다.


  중간에 예쁜 가게를 보면서 들어가서 밥도 먹고 싶고, 빙수도 먹고 싶고, 바다보면서 쉬다가고 싶지만 ...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해서 계속 올라갔다. 에노시마의 3곳의 신사 중 첫 번째로 간 곳은 나카츠미야! 853년 처음 건립되고, 현재의 건물은 1549년에 재건된 것이란다. 빨간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신사 앞에 매화가 만발하면 참 이쁘다던데 ... 다시 볼 수 있을까?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하자 나타난 둥근 지붕!! 뭐지? 가이드북을 보니 '에노시마다이샤'라고 메이지 유신 때 신사의 불교적 요소를 없에는 훼불궤석 정책으로 헐린 어느 절을 재건한 것이란다. 안에 실내에 있는 것으로는 최대규모라는 불상이 있다던데 ... 일단 패스!!
  멀리서 조금씩 보이던 에노시마 한 가운데 있는 탑 같은 것은 전망대였다. 가까이 가니 전망대 주변에는 정원도 있었지만 ... 입장료가 있어서 또 패스!! 난 뭘 보고 온것일까!!!


  다음으로 갈 곳은 섬 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오쿠츠노미야!! 혼자서 멀고 지루한 길을 걸을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서 문득 뒤를 바라보면, "아! 내가 이만큼 올라왔나!"란 생각이 드는 묘한 성취감도 좋았고, 골목길 사이사이 살고 있는 사람들, 상점들, 예쁜 꽃들을 보고 바람의 향기를 맡는 것도 좋았다. 이런 섬에서 사는 삶은 어떨까, 라는 생각도 문득 하다가 평화로운 바다는 좋지만 화난 바다는 왠지 무서울 것 같아 그냥 가끔 바다를 보는 삶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세 오쿠츠노미야 도착!!나카츠미야의 화려하고 정돈된 분위기와 달리 오래된 신사의 느낌이 물씬나는 곳이었다.


  오쿠츠노미야에서 2분 걸리는 곳에 코이비토노오카(恋人の丘)라는 곳이 있는데, 에노시마를 만든 용이 선녀와 결혼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1996년 류렌노카네(龍恋の鐘)라는 종이 있는데 연인들의 성지란다. 그래서 자물쇠도 주렁주렁. 어딜가나 커플이 문제!!!!!! 코이비토노오카로 가는 산길은 우리동네 뒷산 올라가는 길이랑 너무 똑같아서 깜짝 놀랐다! 살짝 보이는 일본어 안내판만 없었다면, 정말 우리동네인 줄 알았을것이다!

  오쿠츠노미야에서 바다쪽으로 내려가면 너비가 50m나 되는 바위가 있는 절벽이 있다. 이곳이 바로 치고가후치(稚児が淵)!


  날씨가 좋은 날에는 후지산까지 보인다던데, 내가 간 날은 보다시피 아주 흐린날이었다. 여기 경치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여러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지금 보니까 다 똑같다. 바다와 바위의 앙상블일 뿐 ... 한 바위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한참 생각했다. 그냥 이것 저것 ... 한국에 돌아가면 어떻게 해야할 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그 때 그 바위 위에서 고민하던 일을 지금 돌아보면, 그 때 생각했던 것 만큼 절망적이지 않고, 오히려 잘 풀리고 있지만 그 때는 참 답답했다. 그래도 내 마음을 에노시마의 바람과 파도가 달래주었는지, 막상 바위에서 일어날 때는 내 마음도 툭툭 털고 일어난 것 같았다. 이제 다시 에노시마역으로 돌아갈 시간!!


  하지만 내 앞을 가로막은 것은 바로 오르막길!!! 하지만 또 가다보니 내리막길도 있었다. 인생은 정말 '오르막길~ 내리막길~♬' 인가보다. 돌아갈 때는 온 쪽과 반대 길로 갔는데, 그 길에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좀 무서웠다. 그래서 내리막길은 뛰어갔다 ;;;

  아차! 그러고보니 헤츠노미야를 빼놓고 왔다. 돌아가는 길에 헤츠노미야에 들렀다.


  헤츠노미아는 1206년 건립된 에노시마 신사의 본전이라고 한다. 저기 위에 사진 안에 동그란 것. 어떻게 돌면 아마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해서 열심히 돌았다. 그리고 아래 사진은 작은 연못. 모두가 행운을 빌며 동전을 던졌다. 내 동전은 물 속으로 퐁당!!!

  그 작은 섬에서 그토록 빌었던, 좋은 일만 일어나게 해달라고 했던 내 소원들은 아직 유효할까. 잊고있었는데, 문득 생각났다. 지금도 누군가가 이 작은 섬에서 소원을 빌고 있겠지.

  헤츠노미야를 마지막으로 에노시마에서 나와 다시 에노시마 역까지 걸어가 에노덴을 타고 시나가와에 가서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혼자 여유롭게 다녔는데, 처음에는 좀 쓸쓸했지만 생각도 많이하고, 찍고싶은거 찍고, 구경하고 싶은것 구경하고. 나름 즐거웠다. 누군가 여행의 즐거움을 나눌 사람이 있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사실 이 날 너무 피곤하고 우울해서 사진도 많이 안 찍었는데, 그래도 사진과 사진 사이의 여백에 나만의 추억들이 스며있어, 사진을 다시 보니 그 순간순간이 다시 기억났다. 그날 쓴 일기에 '글쎄, 한 번은 좋지만 다시 올까?'라고 적혀있던데, 다시 가보고싶다. 맑은 날에. 이왕이면 낭만의 섬을 같이 걸을 누군가와. 다시가면 전망대도 올라가고, 정원도 가고, 헤츠노미야에서 동전도 골인시키고, 가마쿠라고교 역에서 내려서 슬램덩크 건널목을 건너보고 봐야겠다. 다시 갈 때까지 안녕, 에노시마.

  아, 그 날 일기에 한 마디 더 써있었다. '이 작은 섬에 왜 이렇게 신이 많아!!!!'